초코파이 히스토리
작성일2006-11-06
33년간 변함없는 사랑, 세계인에도 ‘情’ 통했죠
그룹 담철곤 회장 CF 출연 후 이미지 업그레이드, 매출상승 견인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노래, 1974년 태어난 ‘오리온 초코파이 情’의 주제가이다. 얼마 전까지 ‘오리온 초코파이’의 CF 음악에는 어린 아이도 전문가수도 아닌 중년 남성이 노래를 부르며 CF에 출연 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주인공이 누굴까 궁금해하며 ‘꽃미남 중년이다’, ‘다른 광고들과는 달리 진실한 것 같다’ 등 화제가 됐다. 이 광고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오리온그룹의 담철곤 회장이었다.
담철곤 회장이 ‘오리온 초코파이’ 광고에 직접 출연하며 매출은 3월 전년대비 10% 상승, 73억 원을 기록했다. 30년이 넘은 장수제품의 매출 10% 상승 뒤에는 ‘오리온 초코파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변함없는 ‘믿음’, ‘신뢰감’ 때문이었는데 담철곤 회장 CF편이 최근 이미지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키며 매출상승을 견인했다.
초코파이가 오리온그룹에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제품이지만 그룹 회장이 직접 광고에 출연해 33년 동안 소비자들의 ‘믿음’에 대한 감사를 직접 표현함으로써 ‘신뢰감’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오리온의 대표제품인 ‘오리온초코파이’가 탄생 33주년을 맞아 혁신적인 제품으로 재탄생을 앞두고 연일 회의가 벌어졌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오리온 국내 매출액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빅 브랜드 일 뿐 아니라 브랜드 자체가 회사를 상징하고 있으니 초코파이의 혁신작업은 그야말로 전사적으로 진행되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지금까지 초코파이와 달리 새로 선보인 초코파이는 머쉬멜로우에 콜라겐을 첨가해 피부미용을 고민했고, 당을 줄이는 대신 올리고당을 첨가하고, 계란 함량을 증가시켜 영양성분도 높였으며 패키지도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는 등 단순한 리뉴얼이 아닌 혁신이었다. 이렇다 보니 ‘오리온 초코파이’는 전환점이 필요했고 새로운 광고도 절실했던 것.
마케팅팀뿐 아니라 관련 부서들이 총력을 다해 초코파이를 통해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화합의 메시지를 전개하자는 의견부터 ‘情’캠페인의 완결편, 디지털 시대에 맞는 광고안까지 새로운 의견들을 제시했다. 그러던 와중, 획기적인 기획안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다름아닌 오리온의 영혼이라 할 수 있는 오리온 초코파이 광고에 창립 50주년을 맞아 오리온을 대표하는 담철곤 회장을 출연시키자는 것이다.
한 마케팅 담당자의 획기적이며 도전적인 기획안을 담철곤 회장이 즉각 수용, CF 음악 녹음부터 제작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월 14일 광고가 단 한번 방송되자 다음날, CF 모델이 누구냐며 네티즌들 사이에 전문 모델이다 아니다 등의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오리온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광고 주인공이 누구냐고 묻는 질문이 쇄도했다.
본래 ‘오리온 초코파이’ 담철곤 회장 CF편은 2월 한달 간 방영 예정돼 있었지만, 소비자들에게 그룹 최고경영자가 직접 신뢰의 메시지와 감사 인사를 전달하며 매출은 10% 상승하며, 광고 자체로도 많은 이슈가 되며 3월까지 연장 진행됐다.
한국을 대표하고 오리온을 대표하는 ‘오리온 초코파이’지만 한 때 퇴출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초코파이 퇴출 논란은 이번 CF의 모델이기도 한 담철곤 회장이 오리온(옛 동양제과)의 부사장으로 재직할 때였다.
80년대 들어 경쟁사의 ‘오리온 초코파이’ 유사품들이 등장하며 그 동안 없어서 못 팔았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인기였던 초코파이가 마이너스 역 신장세를 보였다. 83년 246억 원의 매출을 보였던 초코파이는 이듬해인 84년 172억 원으로 매출이 하락했다. 이 후 85년 200억
원, 86년 220억 원, 87년 매출액이 229억 원의 지나지 않는 등 사내에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다.
오리온 영업부문에서는 전시 상황이나 다름 없었으며, 당시 그 대책으로 초코파이와 유사한 자체 패밀리 제품들을 개발했는데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초코파이는 초코파이대로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신제품은 신제품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또 당시까지 초코파이의 소비자층이 군인이나 주부들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학생들을 주대상으로 한 광고들을 내보내는 우(愚)를 범하고 있었다.
급기야 1987년 가을, 이러한 일련의 어려움들 속에 초코파이 관계자들은 “제품 수명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3-5년 밖에 가지 못했다는 불안함을 보이면서 ‘오리온 초코파이’가 너무 장수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장에서의 역 신장세뿐 아니라 회사 내적으로도 76년 100원으로 가격을 올린 이 후 10년 넘게 100원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가 압박이 계속되고 있었다. 한 해 2억 5천 개 이상은 판매되어야 원가구조가 맞는 상황이었으나 87년 당시 이 수치에 미치지 못한 점도 초코파이 퇴출론을 부추겼다.
하지만, 오리온이 독창적으로 개발한 초코파이에 대한 당시 담철곤 부사장(현 오리온그룹 회장)을 비롯한 전 직원들의 애정과 열정은 쉽게 초코파이를 보낼 수 없었다. 1974년 ‘오리온 초코파이’ 출시 당시 건빵, 캐러멜류가 전부였던 우리 국민들에게 초코파이는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현 오리온의 자리이기도 한 용산구 문배동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도매상들로 장사진을 이뤘었다. 선대회장인 동양그룹 故 이양구회장께서 우리 국민들에게 먹을 거리를 통해 행복을 주겠다는 의지로 표현된 초코파이는 오리온의 영혼과도 같은 제품이었고 우리기술로 독창적으로 만든 제품이었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그 인기뿐만 아니라 우리기술, 국민과자로서 사명감, 오리온의 창업이념 등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는 제품이었다.
선대 회장의 창업이념을 이어받은 담철곤 부사장의 초코파이에 대한 애정은 전 직원들에게 전달되며 ‘오리온 초코파이’에 대한 부활작전에 돌입, 첫 단계로 이미지 변신을 기획했다. 기존 어린이 대상의 한정된 이미지에서 전 세대를 망라할 수 있는 범 계층적인 이미지로의 전환이 필요했다.
또 광고의 홍수 속에서 독특한 이미지, 소비자와 함께 소비자가 원하는 소비자가 듣고 싶어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쌍방향커뮤니케이션(two-way communication) 전략을 수립했다. 이때 등장한 개념이 ‘情’ 이었다. ‘情’ 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공감하는 정서다. 과거에 있었던 情, 바로 이런 것을 오리온 초코파이에서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빅모델은 쓰지 않고 보통사람들의 이야기, 우리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 하기로 했다.
1989년부터 시작된 오리온 초코파이 ‘情’ 캠페인 광고는 ‘이사가는 날’, ‘삼촌 군대가는 날’, ‘할머니댁 방문’ 등 현대인들이 잊고 지내던 정서인 가족간의 ‘情’, 이웃간의 ‘情’을 불러일으켰다. 또 ‘건널목 아저씨’, ‘집배원 아저씨’ 편 등 가족, 이웃간의 情에서 사회적인 情으로 확대, 총 20여 편의 광고를 선보이며 ‘오리온 초코파이’하면 ‘情’을 떠올리게 했다.
특히 1994년부터 1998년까지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목적으로 ‘오리온 초코파이’ 책걸상 교체 캠페인을 벌이며 2만여 조의 책걸상을 교체하며 전국 초등학교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개선해 나가며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情’광고 캠페인과 사회환원사업을 통해 ‘오리온 초코파이’는 ‘情’의 매개체가 됐고 공산품 중 유일하게 인성(人性)을 가진 제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오리온 초코파이’ 매출액은 크게 신장하며 89년 313억 원이었던 매출액이 90년 419억 원, 91년 455억 원, 92년 444억 원 등 매해 높은 성장을 하게 됐다.
98년 IMF 경제위기 당시 온 국민이 실의에 빠져있을 때 ‘情’소녀를 등장시켜 ‘둥근정이 떴습니다’라는 광고 카피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2000년대 들어 ‘오리온 초코파이’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情’을 기반으로 신세대들의 ‘情’을 표현하고 있다. 십대들을 광고 모델로 중,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남, 녀 학생간의 ‘情’, 연상연하 중고생들의 우정을 모티브로 광고를 전개하는 등 현재 시대에 맞는 ‘情’의 재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해에는 ‘오리온 초코파이’ ‘情’을 영화로 옮겨 ‘말아톤’, ‘웰컴투동막골’과 함께 문화마케팅을 전개하는 등 친숙하지만 늘 새로운 제품으로 소비자들 곁에 다가가기 위에 애쓰고 있다.
한때 ‘우리 것이 제일 좋은 것이여’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이 광고 카피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오리온 초코파이’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우리가 과자가 제일 좋은 과자’로 글로벌 제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한 해 해외에서만 1천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지난 해 사상 최초로 국내 초코파이 매출액을 넘어 대한민국 과자, 우리나라 제품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또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情’이란 정서를 세계인에게도 알리고 있다. 해외에서 진행되는 광고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내 초코파이의 ‘情’과 같은 맥락이다.
90년대 초반 국내시장 성공을 바탕으로 해외로 시야를 넓힌 오리온은 초코파이라는 독창적인 제품을 가지고 코카콜라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를 꿈꾸며 다국적 글로벌 기업들이 점령하고 있는 중국, 러시아, 베트남 시장 등에 도전장을 냈다.
첫번째 성공의 진원지는 중국. 중국에서는 ‘오리온 초코파이’라는 이름대신 오리온과 발음이 비슷한 ‘하우리여우’(好 麗友) 라는 이름, 좋은 친구라는 뜻으로 브랜드를 개명하고 국내 제품과 달리 빨간 패키지로 갈아입고 진출했다. 사실 브랜드 개명의 배경은 경쟁사에서 원조 제품인 ‘오리온 초코파이’를 이미 등록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브랜드 개명이 중국인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는 기회가 됐고 큰 성공에 이르게 된 것이다.
90년대 초반 진출 초기에 한 해 광고비를 다 쏟아 천안문 광장에 입간판을 세우기도 했고, 일명 트래쉬 마케팅(trash marketing)을 개발 초코파이 시식회 현장에 쓰레기통을 없애 바닥에 버린 초코파이 봉지로 소비자들에게 각인 시키는 등 중국 시장 입성을 위한 수많은 실험적인 마케팅 기법들이 시도됐다.
다양한 마케팅 시도와 함께 중국 현지 TV 광고도 초코파이가 인기를 얻어가며 국내 광고와 맥을 같이하는 ‘情’을 알리고 있다. 대표적인 중국 현지 광고는 ‘만리장성 편’(2004)으로 눈 내린 겨울 만리장성을 힘들게 걷는 친구를 위해 초코파이를 떨어뜨려 놓아 용기를 주는 꼬마의 모습을 통해 친구간의 우정, 한국적인 ‘情’을 중국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오리온 초코파이’가 성공한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족간의 ‘情’을 컨셉으로 광고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유소년 체육 행사에 메인 협찬사가 되기도 한다.
오리온의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따뜻한 情을 바탕으로 초코파이에 대한 사랑과 성
원에 계속 보답해 갈 계획이다”라고 했으며, 또한 “세계인들에게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일한 정서인 情을 초코파이를 통해 계속 알려나갈 계획이다”라고 했다.
한편, ‘오리온 초코파이’는 2003년 9월 제과업계 사상 최초로 단일 누적 매출액 1조원을 돌
파했으며, 지난 해 국내에서 86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해외에서 매출액은 1천억 원
을 넘어 섰으며 특히 해외에서는 해마다 50-60%의 고성장을 이뤄내고 있다.